언론보도
나이 여든에도 목표 향해 질주 "삼위일체 병원 설립 마지막 꿈" [나의 삶 나의 길]
- 작성일2019/02/0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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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풍 환자만 50년 진료한 박상동 원장
50년 간 뇌졸중 환자를 전문으로 진료해온 ‘외골수’ 한의사가 있다. 박상동(79) 동서한방병원·동서병원·파주동서한방병원 의료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박 원장은 대학 재학 중 방학 때 농촌지역의 무료진료 봉사를 하며 뇌졸중에 걸려 회복하지 못하고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어르신을 보고 뇌졸중전문 한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50년간 뇌졸중 환자 진료만 고집해온 박상동 동서한방병원·동서병원·파주동서한방병원 의료원장은 지난 1일 서울 연희동 병원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60세를 넘으면 누구나 세 가지 병이 생긴다”며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열심히 살며 매일 5000보 이상 걷는 등 규칙적으로 유산소운동을 하면 건강해진다”고 강조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
박 원장은 나이 여든인데도 일주일에 3일간 진료를 직접 볼 정도로 건강하다. 그는 건강 비결로 “섭양(攝養)·섭생(攝生)을 잘한다”며 “특히 유산소운동을 규칙적으로 한다. 매일 5000보 이상을 걷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이와 상관없이 목표를 정해 놓고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젊음을 유지하는 비법이라고 설파했다.
그는 평생 ‘꿈꾸는 삶’을 생활신조로 삼은 데 대해 “좌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면 늙지 않고 세포가 젊어진다”고 설명했다. 남은 계획은 고령화 시대를 대비해 요양병원을 개원하는 것. 기존의 병원, 한방병원에 요양병원을 만들어 양·한방·요양병원 ‘삼위일체 병원’을 구축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박 원장은 한방병원 내에 허준 동상을 세우는 등 한의학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남다르다. 1971년 한의사로는 처음으로 세무사 자격증을 취득할 정도로 다재다능하기도 하다.
지난 1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동서한방병원·동서병원 원장실에서 박 원장을 만났다. 50년간 뇌졸중 전문 한의사로서 살아 온 소회를 담담히 털어놨다.
―뇌졸중 환자 진료만 고집한 이유는.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시골에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해 뇌졸중에 걸려 평생 불구로 살아가는 모습을 어릴 때부터 지켜봤다. 특히 대학 때부터 여름·겨울 방학을 이용해 고향인 경북 의성군 비안면 등 각 면 소재지를 다니며 무료진료를 하며 봉사활동을 했다. 당시 입이 돌아가고, 팔다리를 못 써 지팡이를 짚고 걷는 환자를 보며 뇌졸중을 고치는 한의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학 때 그런 결심을 한 후 지금까지 평생 뇌졸중 환자와 싸우고 있고, 뇌졸중만 전문으로 진료한다. (한방전문의로서) 진료한 지 50년, (개인한방병원) 개원한 지는 35년이 된다.
병원을 찾는 환자 가운데 70∼80%가 뇌졸중 환자다. 그동안 진료한 환자 수는 헤아릴 수 없고, 많은 뇌졸중 환자를 고쳤다. 나만큼 뇌졸중 환자를 진료한 한의사도 드물 것이다. 뇌졸중은 한방이 아니면 치료하기 힘든 난치성 질환이다. 고개가 돌아가는 사경증, 머리를 흔드는 두요증과 수전증, 무도병도 한방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얼굴에 마비가 와 입이 돌아가 말을 못하거나 팔다리가 마비돼 걷지도 못할 경우 한방의 ‘일침이구삼약’의 삼위일체 처방을 하면 정상으로 돌아온다. 뇌출혈, 뇌경색, 일과성뇌허혈증 환자에게도 한방으로 치료하면 탁월한 효과를 본다. 양방은 급성질환의 수술에 장점이 많지만, 한의학은 만성이나 난치성 질환으로 치료가 잘되지 않는 환자에 침, 뜸·부황 등 한방으로 처방하면 신기하게 낫는다. 경험을 통해 이를 확인했다.”
―한의사 전문의 제도 도입에 큰 역할을 하셨는데.
“그동안 한의학 박사과정 제도는 있었지만 전문의 제도는 없었다. 2001년 한의사 전문의 제도가 도입됐다. 그때 내가 사단법인 대한한방병원협회 회장을 하며 전문의 제도의 필요성을 느끼고 임기 중에 노력해 성사시켰다. 5000년 역사에 비하면 아주 늦었다. 내가 한의사 전문의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원로 전문의다. 전문의 도입 후 전문의 자격증을 땄기 때문이다. 전문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한의사 배출 인원은 2만5000명인데 이 중 전문의는 10%에 해당된다. 한의사 전문의 제도가 도입된 후 양방의 전문의와 한방의 전문의가 대등한 입장에 서게 됐다. 그전에는 양방과 한방에 엄청난 편견이 있었다. 양방은 한방 위에 있었고, 진료나 여러 측면에서 한방이 양방만큼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전문의 도입 후 한의학의 위상이 크게 제고됐다. 양·한방 전문의가 모든 진료과정에 동등한 입장에서 환자를 치료하기 때문이다. 환자들도 이 점을 공감한다. 한의사 전문의는 인턴 1년, 레지던트 3년 수련 후 전문의 시험에 합격해야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1주일에 3일을 진료할 정도로 건강한데.
“부모님한테 유전자를 잘 이어 받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주일에 3일을 진료해도 피곤하거나 힘들지 않다. 전혀 서툴지 않게 전산시스템을 사용한다. 독수리 타법이 아닌 양손으로 컴퓨터를 이용한다. 다만 속도가 좀 느리다. 컴퓨터를 쓸 줄 모르면 젊은 한의사를 못 따라 간다. 환자들이 ‘선생님, 컴퓨터를 할 줄 아네요’라고 종종 질문한다. 안경을 쓰지 않고 영문으로 검진 결과를 표기하고 이를 설명하면 환자들은 ‘그거 다 보이세요?’라며 감탄한다. 할아버지 소리를 안 듣는다. 목표 없이 사는 젊은이들이 병에 걸린다. 40∼50대에 치매 환자가 많다. 직장을 그만두고 술·담배하며 좌표 설정 없이 비 규칙적인 생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치매가 찾아온다. 젊은이들은 꿈과 희망을 갖고 노력해야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 남들은 ‘나이가 그 정도면 쉬지, 뭘 또 하려느냐’고 말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지금도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목표가 궁금하다.
“의료사업을 하는 것이다. 진료수입으로 인건비 등 병원을 꾸려 나가야 하는데 지금 경기가 전반적으로 나빠 사정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전문화·특화된 우리 병원은 큰 어려움이 없지만 앞으론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고령화 시대에 치매 등 중증 환자를 위한 요양병원을 개원하는 것이 꿈이며 목표다. 나이가 들며 찾아오는 병이 치매, 뇌졸중, 파킨슨병 등 뇌질환이다. 이런 질환은 완치가 거의 어렵고 증상을 안정시키고 요양이 필요하다. 노후에 몸이 아프면 병원보다는 요양병원에 입원해 의료 혜택을 받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환자 본인의 부담을 줄이며 정부 지원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이 요양병원이다. 정부가 요양병원에 1베드당 100만원씩 지원해 환자에 대한 양질의 진료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요양병원은 점차 확대해야 한다. 정부의 중점 사업 중 가장 잘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병원·한방병원·요양병원 삼위일체를 형성하려고 한다. 내 일생의 마지막 사업으로 올해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병원 원훈을 ‘항상 웃으며 친절하자’로 정했더라.
“환자는 몸과 마음이 아프고 약하다. 의료진이 환자에게 교만, 건방지거나 불친절하면 안 된다. 퉁명스럽게 대해서도 안 된다. 항상 웃으며 따뜻한 마음으로 환자를 포용해야 한다. 환자가 가고 싶은 병원이 돼야 한다. 환자가 물으면 이해할 때 까지 성실히 설명해야 한다. 의사가 권위의식에 젖어 있으면 환자의 발길은 끊어진다. 병원의 의사·한의사, 간호사, 주차관리요원에 이르기까지 원훈대로 하라고 늘 얘기한다.”
―모교에서 ‘박상동실’ 강의실을 만들었는데.
“지난해 10월 모교인 경희대가 한의과대학과 의과대학 건물을 멋지게 지었다. 대학 측이 그동안 모교에 공로를 세운 동문 7명의 이름을 명명한 강의실을 마련했다. 한의사 전문의 제도 도입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는 등 한의과 출신으로 모교를 빛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동문회관을 건립했고, 기금을 조성해 장학재단을 만드는 등 동문회를 활성화한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경희대) 동문이 30만명이 넘는데 그동안 법대, 정경대 출신의 국회의원과 장관 등이 총동문회장을 맡았다. 의학계열 출신 총동문회장은 내가 처음이다.”
―봉사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보람 있는 일은.
“원로가수 오기택씨가 언론을 통해 뇌출혈로 식물인간이 된 사실을 알았다. 수소문을 했더니 요양병원에 있더라. 말도 제대로 못한 오씨를 우리 병원으로 옮겨 3년4개월간(2013년 11월∼2017년 3월)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했다. 전액 무료로 했다. 이제는 말도 제대로 하고 음식도 삼킬 수 있다. 보행이 불편할 뿐 거의 정상인으로 회복됐다. 퇴원 후 일주일에 2∼3회 외래진료를 받고 있다. 가장 큰 보람이다. 그분이 부른 ‘영등포의 밤’ ‘우중의 여인’ ‘고향무정’ ‘아빠의 청춘’ 노래를 무척 좋아한다. 이름을 공개할 수 없지만 돌아가신 전직 대통령 가운데 단골환자도 있었다.”
황용호 선임기자 dragon@segye.com